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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showing everything, I can't know who I am anymore

Après avoir tout montré, je peux plus savoir qui je suis maintenant

다 보여주고 나니, 이제 내가 누군지 모르게 되었다

Sculpture

boîtes d'emballage

Format di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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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마트의 상품 포장 상자를 분해한 뒤에, 거꾸로 뒤집고 다시 재조립한 조형 작업입니다. 이제 알록달록한 광고가 있는 외면이 내부로 들어왔고, 내면은 외면이 되었습니다.

 

상자를 뒤집어 내면인 부분을 완전히, 솔직하게 드러내니 형태는 여전히 이전과 같지만 이제 이것이 원래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더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변형의 결과를 인간의 심리적 상태, 그 중 사회적 환경 속에서의 자아에 대한 고민과 결합해 보았습니다. 

 

화려한 광고가 그려진 제품 상자의 외면은 인간관계 속에서 나를 드러내는 행위, 마치 타인에게 나를 알리기 위해 광고하는 것에 비유되었습니다. 결국, 이 외면은 내가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부분, 잘 보이고 싶은 욕망의 표현으로, 타인이 나를 이렇게 인식해주기를 바라는 부분입니다. 

 

상자 바깥의 알록달록하고, 매끄럽게 잘 코팅된 광고 면과 완전히 대비되는 거친 회색 면의 내부, 이 차이는 “페르소나” 개념의 "사회적 가면"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리고 이는 타인에게 비치는 나, 욕망과 솔직 사이의 '진짜 나'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포장되지 않은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고 편안하게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태 밖으로 표현해 구축해온 외면과 실제의 내면에 차이가 있을 때 발생할 외부의 거부 반응, 그리고 그로 인한 갈등에 대한 두려움도 역시 함께 존재합니다. 이것은 어쩌면 본래의 자아와, 함께 존재하는 사회적인 다른 자아 사이에서의 혼란입니다. 


 

페르소나 개념이 널리 알려지고 활용되는 이유처럼, 당연히 저는 이 혼란과 질문에 관심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비슷한 혼란을 겪으며 자신의 진짜 모습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최종적으로 이 작업은 크고 작은 상자들, 각기 모양이 다른 상자들의 모음이 되어 다양한 모습과 내면을 가진 타인을 함께 보여줍니다. 

 

또한 이렇게 상자를 분해하고, 훼손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거칠게 뜯겨 나가거나 찢어진 흔적이 남습니다. 저는 이것을 흉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흉터들로 내면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얻는 고통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 흉터와 상처들은 동시에 어떤 용기를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드러냄의 시도들이 나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또한 나의 내면이 비록 나약하고 다듬어지지 않았더라도, 그런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용기의 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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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by SIYU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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